본문 바로가기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책리뷰] 건축가 조한이 그려낸 '공간의 위대함'

by yaying 2021. 8. 17.
728x90
반응형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by 조한

 

 

 

건축가 조한은 홍대 앞 서교365과 서촌 옥류동천길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간을 의인화하여, 각 공간의 특성들을 ‘표정’, ‘사연’으로 나타낸 그의 서술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본인과의 추억이 담긴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건축가의 시선으로 공간을 바라보고, 건물 외관 속 숨겨진 비밀들을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 

 

건축과 인테리어에 대해 잘 알지 못해 평소 친구들 사이에서 ‘인알못’이라 불리는 나는 솔직히 이 책이 쉽게 읽히진 않았다. 건축물 하나하나 섬세하게 묘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장소를 내가 직접 방문한 적이 거의 없어서 였는지, 공간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데 사실 어려움을 겪었다. 유년 시절부터 서울에 산 경험이 없어 작가가 서울에 갖는 애착의 정도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책이 서울 대신,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경기도 지역이나 내가 태어났던 전라도 지역을 소개했더라면 더 큰 공감을 했을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감정에 대한 공감력은 다소 부족했지만 크게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공간이 주는 위대함이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건축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우연히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 6개월이 흘렀고(글을 작성한 시점에는 4개월)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작은 골목길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고 역사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현재 회사는 인테리어 자재를 만들고 생산하는데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가장 내세우고 있다. 자연과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지금 내 회사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지의 색깔, 바닥재의 질감 등 작은 장치 하나가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 주고 더 나아가 큰 감동까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TV 예능도 하나 있었다. 바로 개그맨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 대한민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 지역에 사는 일반인들을 인터뷰하는 이른바 ‘사람 여행’ 프로그램이다. 일전에 그들이 세운상가를 방문한 편을 봤었는데 책 속에서 세운상가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 상가를 가보진 않았지만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며 책을 읽으니 간접적으로나마 그 공간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람이 그 공간을 더욱 아름답고 빛나게 만드는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의 소중한 공간에 대해 읽으며, 나도 내 나름대로의 추억의 공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집 앞 공원? 대학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신촌?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졸업했던 고등학교와 관악산길을 연결해주는 과천의 한 산책길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나도 잘 모르겠다.) 파릇파릇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의 추억도 소중하지만, 누가 나에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묻는다면 바로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만큼 내 감정에 가장 솔직하고 순수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원하던 대학에 붙었을 때,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담임선생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리려고 그 오르막길을 힘차게 뛰어갔던 기억이 지금까지 너무나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을에는 땅에 떨어진 은행의 고약한 냄새로 얼굴을 찌푸린 적도 있고, 등교할 때 비몽사몽으로 눈을 거의 감은 채 길을 올라가며 투덜댔던 적도 있지만, 그 마저도 지금은 다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절대 잊고 싶지 않은 고등학생의 시절을 선물해준 길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